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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9 21:17

남북특사교환

1) 배경

 

국제정치관계에 있어 최고책임자 간 의사가 정확하게 소통되는 것은 매우 중요하며, 그래서 정상 간의 회담은 다른 급의 회담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성이 크다. 그러나 정상 간의 만남은 그 중요성만큼이나 절차상 준비과정이 간단 치 않기 때문에, 정상 간 직접 만남을 대신해서 또는 정상 간 만남에 앞서서 특사 외교를 많이 활용한다. 군사적 대치 상태 가 엄중하고 신뢰가 구축되지 않은 남북관계에서는 현안 문제 를 해결해 나가는데 있어 최고책임자의 의사는 결정적이며, 그 의견 교환을 매개하는 특사의 임무와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배경에서 남북 간에도 1970년대부터 특사교환이 여러 차례 이루어지면서 그때그때마다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마련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해 왔다. 특히 2000년 ‘6·15 공동선언’ 이후에는 특사 교환이 11차례 개최되면서, 공동선언 이행 과정에서 새로운 문제가 제기되거나 의견 차이가 커서 정체상 태가 빚어질 경우, 그리고 환경변화의 영향으로 남북관계가 장 애에 부딪쳐 있을 경우, 현안문제를 조정하고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2) 관련 경과

 

① 1980년대 이전

 

남북 간의 특사교환은 1970년대로 거슬러간다. 당시 남 과 북은 1971년부터 시작된 남북적십자회담을 매개로 막후협 상을 거쳐 1972년 5월 2일부터 5일까지 이후락 중앙정보부장 이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과 두 차례, 김영주와 두 차례의 회담 을 가졌다. 그 후 5월 29일부터 6월 1일까지 북한의 박성철 부 수상이 몸이 불편한 김영주 부장의 대리인으로 서울을 방문해 평양에서의 합의사항을 재확인한 후, 이를 토대로 남북한은 ‘7·4 공동성명’을 발표하게 된다.

 

남북 간의 두 번째 특사교환은 1985년에 추진되었다. 당 시 남북 간에 1984년 말부터 남북경제회담과 남북적십자회담 이 진행되고 있던 상황에서, 양측은 국제회의 및 적십자회담 등에서의 막후접촉을 통해 쌍방 특사의 교환 방문에 합의하였다. 그 결과 1985년 9월 4일 북한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 장 허담이 서울을 방문하였고, 10월 16일에는 장세동 국가안 전기획부장이 평양을 방문하여 각각 전두환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을 면담하고 친서를 전달했다. 당시 우리 측은 북측이 남 북정상회담의 조속한 개최를 희망한다고 하면서도 구체적인 시기를 정하는데 주저하고, 특사교환 직후 부산 앞바다에 무 장간첩선이 침투하다 격침되는 사건이 발생하자 북한 측의 진 의를 불신하고 정상회담을 더 이상 추진하지 않기로 결정하여 특사교환은 성과 없이 종료되었다.

 

② 1990년대

 

그 후 남북 간에 특사교환 논의는 1차 북핵 위기가 고조 되고 있는 상황에서 1993년부터 1994년 사이에 다시 진행되 었다. 1993년 3월 북한이 핵비확산조약(NPT)을 탈퇴하겠다고 선언하자 우리 측은 핵문제의 위중성을 감안, 남북관계의 진 전과 핵문제 해결을 연계시키는 전략을 수립하고 1993년 5월 20일 핵문제 해결을 위해 남북고위급회담 대표접촉을 갖자고 북측에 제의하였다. 이에 대해 북측이 정상회담 문제와 남북 사이의 현안문제 협의를 위한 특사교환을 하자고 역제의를 해 옴에 따라, 남북 간에는 1993년 10월 5일부터 1994년 3월 19일 까지 8차례의 ‘특사교환을 위한 실무대표접촉’이 진행되었다.

 

제1차 접촉은 북한이 ‘핵전쟁 연습 중지’와 ‘국제공조 체 제 포기’를 전제 조건으로 내걸어 진전을 보지 못했다. 3차 접 촉 이후에는 우리 측 국방장관이 한미 연례안보협의회에서 북 한의 우발적 도발에 대한 문제도 논의될 것이라고 발언한 것 을 문제 삼아 북한이 접촉을 중단시켰다. 이후 1994년 3월 3일 특사교환을 위한 4차 실무대표 접촉이 재개되었으나, 3월 19 일 8차 접촉에서 북한 측이 “전쟁이 일어나면 서울이 불바다 가 될 것”이라는 위협 발언을 하고 일방적으로 퇴장함으로써 이 실무대표접촉은 종료되었다.

 

③ 2000년대

 

2000년 이후에는 6·15 공동선언 이행과 관련하여 2000 년 9월 11일 김용순 대남담당비서가 남한을 방문함으로써 남 북 간에 다시 특사교환이 시작되었다. 김용순 비서는 제주도와 경주, 포항을 방문하고 김대중 대통령을 예방하였다. 특사 간 의 협상을 통해 김정일 위원장의 서울 방문에 앞선 김영남 최 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방문, 빠른 시일 내 경의선 철도·도로 연결 기공식 개최, 연내에 이산가족 방문단 교환 두 차례 추가 실시, 남북국방장관회담과 이산가족의 생사·주소 확인 및 서 신교환사업 추진 등 7개 항에 합의하였다.

 

2001년에 들어와 미국 부시 행정부의 대북 강경정책과 9·11테러 등으로 남북관계가 소강국면을 맞이한데 이어 남북 장관급회담도 중단상태에 들어가자 우리 측은 이를 타개하기 위해 2002년 4월 3일 임동원 특사를 평양에 파견했다. 임동원 특사는 김정일 위원장을 면담한 자리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친 서를 전달하고 남북관계, 미·북대화, 북핵 문제 등 현안문제 해 결을 위한 김정일 위원장의 결단을 촉구했다. 김정일 위원장 은 그동안 정체되어 온 남북관계를 복원하겠다는 입장을 밝히 고, 경의선과 함께 동해선 철도·도로도 연결해 나가자는 제안 을 내놓았다. 이를 토대로 임동원 특사는 김용순 비서와 회담 을 갖고 경의선·동해선 연결 착공, 북한의 부산 아시아경기대 회 참가,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와 금강산당국회담 개최, 이 산가족 방문단 교환, 북한 측 경제시찰단 파견 등에 합의하고 구체적인 추진일정을 합의서에 명시하였다.

 

2002년 10월 미국 켈리 특사의 방북 이후 북한의 고농 축우라늄계획(HEUP) 의혹으로 불거진 2차 핵위기의 발생으 로 한반도에 다시 긴장이 고조되었다. 우리 측은 이 문제를 평 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당시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정해진 상황에서 당선자 측 인사도 대동하여 2003년 1월 27일 임동원 특사를 평양에 보냈다. 임동원 특사는 북한 측 고위 인사들을 만나 고농축 우라늄 계획을 폐기할 것을 설득하는 한편, 북한 측 인사들이 전향적 입장을 갖고 핵문제를 대화릍 통해 조속 히 해결해 나갈 것을 촉구하였다. 그러나 김정일 위원장은 지방에 있다는 이유로 만나지 못하였다.

 

2005년 6월 14일부터 17일까지 평양에서 개최된 ‘6·15 통일대축전’에 우리 측 당국 대표단의 일원으로 참석한 정동 영 통일부장관은 특사 자격으로 6월 17일 김정일 위원장을 만 났다. 이 자리에서 정동영 특사는 북한이 6자회담에 조속히 복 귀할 것과 핵 폐기에 관한 전략적 결단을 내릴 것을 촉구하였 으며, 북한이 핵을 폐기할 경우 남한에서 200만kw의 전력을 송전해 줄 수 있다는 ‘중대제안’을 직접 설명했다. 김정일 위원 장은 미국이 북한을 인정하고 존중하려는 뜻이 확고하다면 7 월 중에라도 6자회담에 복귀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또한 남 북한은 8·15 공동행사에 북한 당국대표단을 파견할 것과 장 성급군사회담을 재개하고 수산당국회담을 개최하며, 8·15를 계기로 이산가족 간에 화상상봉을 실시한다는데 합의하였다.

 

남북 간의 특사파견은 이 밖에도 2000년 남북정상회담 사전 준비 차원에서 임동원 국정원장이 특사로 2회 방북하였 고, 2007년 2차 정상회담을 협의하기 위해 김만복 국정원장이 특사로 2회 방북하였다. 또한 2005년 정동영 통일부장관이 특 사 자격으로 방북한 후 북한의 김기남 노동당 비서가 8·15 공 동행사를 위해 서울을 방문하였으며, 2007년 11월에는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이 남북협력사업 분야 현장을 시찰할 목 적으로 방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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