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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배경

 

1993년 3월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 이후 1994년 봄 심각한 위기로까지 치달았던 북한 핵 문제는 같은 해 6월 중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개입으로 파국 일보 일전에서 겨우 멈출 수 있었다. 북한을 방문한 카터는 김일성 주석과의 합의 결과를 미국 클린턴 정부에 알렸고, 클린턴정부는 이를 접수했다. 이를 계기로 미·북 사이에 핵 문제 및 쌍방 관계 현안을 포괄하는 이른바 포괄적 협상이 재개되었고, 미·북 협상은 같은 해 10월 제네바에서 합의에 도달하였다. 이것이 바로 ‘미·북 제네바 합의’이다. 영어 정식 명칭은 ‘Agreed Framework between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and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이며, ‘미·북 제네바 기본합의’라고도 부른다.

 

 

2) 내용 및 경과

 

제네바 합의에 도달하기까지는 카터 방북 이후 미·북간에 넉 달간의 강도 높은 협상이 있었다. 카터는 미국 정부가 유엔 안보리에 대북 제재 결의안 초안을 회람시키던 바로 그 때인 1994년 6월 15일 평양에 도착했으며, 김일성과 회담하여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감시 하에 북한 핵을 동결할 것을 제안하였고 김일성은 이를 수락했다. 동시에 김일성은 이 회담에서 노후한 원자로를 새롭고 현대적인 원자로로 대체해줄 것과 북한에 대해 미국이 핵공격을 가하지 않겠다는 보장을 요구했다. 카터는 이를 원칙적으로 수용했다. 아울러 카터는 다시 김일성에게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라고 권고했으며, 김일성은 긍정적으로 대답했다. 이로써 지미 카터는 미·북 간 협상을 지속시킬수 있는 단서를 마련하였다.

 

미국의 대북정책이 압박정책에서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로 선회함에 따라 오랫동안 지연된 제3차 미·북 고위급회담이 1994년 7월 8일 제네바에서 개최되었다. 미·북 고위급회담이 열린 바로 그 날 김일성이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미·북 협상은 또 한 번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김정일은 아버지의 유훈을 이어받아 미·북 협상을 지속시켰으며, 클린턴대통령도 6·25 전쟁의 교전 당사자이자 전쟁 때 미군 5만 명 이상의 사망과 10만 명 이상의 부상 등 손실을 안겨 준 장본인인 김일성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는 전문을 보냈다. 이와 같은 우여곡절 끝에 1994년 10월 21일 제네바 회담에서 협상 대표인 미국의 로버트 갈루치 국무 차관보와 북한의 강석주 외교부 제1부부장(현재 내각 부총리)이 최종 합의를 보았다.

 

제네바 합의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북한에서 유일하게 가동 중인 영변의 5MWe급 원자로를 동결키로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북한 내의 다른 두 개의 원자로 건설을 중단함과 동시에, 북한의 모든 핵 시설을 IAEA의 감시 하에 둔다는 것이다. 둘째, 미국은 2003년까지 북한에 200만Kw 발전능력의 경수로형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하기 위한 국제 컨소시엄의 구성을 지원하는 것이다. 또 미국은 경수로 건설 기간 중, 매년 중유 50만 톤을 제공하여 북한의 에너지난을 덜어주겠다고 했다. 셋째, 미국은 미·북 관계를 정상화시키기 위해 외교적 관계를 확대하기로 북한과 합의했다는 것이다. 넷째, 경수로 완공 이전 북한은 의무적인 특별 사찰을 받기로 했으며, 경수로가 완공되면 기존의 5MWe급 원자로는 물론, 건설 중인 두 개의 원자로까지 폐기하기로 약속했다.

 

클린턴 정부는 김정일 정권에 득이 되는 그 어떤 거래도 반대하는 미국 의회의 저항을 우려해 미·북간 제네바 합의를 의회의 공식 비준을 피할 수 있는 형식으로 합의를 이뤘다. 이로써 가깝게는 1993년 3월 북한의 NPT 탈퇴 선언으로, 그리고 멀게는 1980년대 말까지로 거슬러 올라가는 북핵 문제는 해결을 위한 실마리를 찾게 되었다.

 

 

3) 결과

 

제네바 합의 체결 직후, 북한은 원자로 가동을 중단하고, 미국인을 포함한 국제 사찰단원의 영변 복귀를 허용했다. 아울러 미국 전문가 팀과 협력하여 5MWe 원자로에서 ‘사용 후’ 핵연료봉 8천 개를 빼내 냉각조에 넣었으며, 다른 시설도 봉인하고, 이 시설에 대해 국제 모니터링이 지속될 수 있도록 했다.

 

이로써 제네바 합의를 통해 심각한 위기로까지 치달았던 북핵 위기가 진화됐으나, 합의 내용은 물론 합의 그 자체에 대해서는 한국과 미국에서 상당한 논란을 낳았다. 미국 내 합의를 회의적으로 보는 일각에서는 제네바 합의는 북한의 벼랑끝전술에 대한 미국의 ‘굴복’이라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국내에서는 1995년 3월, 경수로 건설을 감독할 컨소시엄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를 발족하면서, 50억 달러에 이르는 건설비를 누가 부담할 것인지, 경수로를 누가 제공할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번졌다. 결과적으로 건설비의 상당 부분은 남한이 떠안게 되어 논란은 더욱 더 가열되었다. 신포에 제공될경수로는 북한과 KEDO 사이에 옥신각신이 있었지만, 최종적으로 한국이 공급하기로 낙착되었다.

 

제네바 합의의 의의에 대해서는 여전히 평가가 갈리고 있다. 비판론자들은 이 합의가 북한 핵 문제의 완전해결을 보지 못한 미봉책이었다고 주장한다. 옹호론자들은 ‘동결’을 통해 위기를 막고, 북한의 추가적인 핵개발을 억제한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제네바 합의는 2002년 2차 핵위기가 발생하고 6자회담이라는 새로운 협상 틀이 가동되면서 2005년 11월 KEDO 집행이사회에서 경수로 사업의 사실상 종료 방침을 결정한 데 따라 유명무실한 합의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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