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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배경

 

2002년 10월 2차 북핵 위기가 발생한 이후 미국의 압박 정책과 북한의 위협조치로 한반도 정세가 긴장의 수위를 높여 가던 상황에서, 미·북 간에는 북한이 주장하는 양자회담과 미 국의 다자회담 주장을 조정하는 문제 자체가 쟁점으로 대두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2003년 4월 중국의 중재로 베이징에서 미·북·중 3자회담이 개최되었다. 베이징 3자회담은 미국과 북 한의 입장을 절충한 것으로서, 미국은 ‘3자회담’으로, 북한은 ‘양자회담’으로 명칭하면서 각기 기존 입장에 대한 정당성을 주장하였다. 베이징 3자회담은 아무런 성과도 없이 결렬되었 으나, 2003년 8월 남북한과 미·일·중·러가 참가하는 6자회담 이 열리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2) 경과

 

2002년 10월 이후 발생한 2차 북핵 위기는 12월 미국의 대북 중유 제공 중단과 이에 대응한 북한의 12월 12일 핵동결 해제 선언, 12월 31일 IAEA 사찰단 추방, 2003년 1월 10일 NPT 탈퇴 선언과 5MW급 실험용 원자로 가동 등으로 수위가 높아 져 갔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2003년 3월 20일 이라크를 침 공하면서 이에 집중하기 위해 북한 핵문제를 일단 봉합한 상 태에서 관리하고자 했다. 또한 북한은 미·북 양자협상을 주장 한 반면 미국은 북한을 다자 틀에 묶어두고 북핵 문제를 국제 화하려고 하여, 회담 형식이 북핵문제 자체에 못지않은 미·북 간 쟁점으로 대두되었다.

 

미국은 북한 핵문제는 국제규범에 도전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평화를 수호하려는 국가들의 단합된 대응이 필요하며, 따라서 다자 간 회담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 었다. 반면 북한은 핵문제는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에서 비 롯되었으며, 자주권과 생존권을 위협하는 장본인이 미국이기 때문에 오직 미국만이 이 문제를 해결할 책임이 있고 따라서 미·북 간 직접 협상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양자 간에 접점을 찾기 어려운 가운데 한반도에 긴장이 조성되자 중국은 첸지첸 전 부총리를 북한에 보내는 등 적극적인 중재와 압박에 나섰다. 회담 형식면에서 3자회담은 양측 입장을 충족시킬 수 있는 안으로 여겨졌다. 3자가 참가한 회담 이라는 면에서 일단 미국이 요구하는 다자회담이라는 형식을 갖추면서 실제로는 중국이 미·북 간에 협상을 하는 자리를 만 들어 주는 양자회담의 요소를 가미한 것이다.

 

이렇게 하여 2003년 4월 23일 베이징에서 ‘3자회담’이 열렸는데, 결과적으로는 양측의 기존 입장만 확인하는데 그치 고 말았다. 즉, 대화(Dialogue)는 있고 협상(Negotiation)은 없었다. 미국은 북한의 핵개발은 제네바 합의 등 국제사회와 의 약속을 위반한 행위이므로 이를 복귀하는데 별다른 보상이 있을 수 없으며 선 핵포기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북한은 체제보장과 경제지원을 해주면 핵포기를 할 의사가 있 다는 입장이었다.

 

이후 미국은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폐 기(CVID)’와 확대 다자회담을 주장했으며,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구상(PSI)과 해외주둔 미군의 신속기동배치 전략 발표 등 을 통해 북한에 대한 압박의 강도를 높여나갔다. 북한도 이에 맞서 미국이 다자회담을 고집하는 것은 문제해결의 의사가 없 는 것이라며 핵 억제력을 강화해 나가겠다고 반발하고 나섰다. 이러한 가운데 중국 등 관련 국가들의 외교적 노력으로 2003 년 8월 27일 베이징에서 남북한과 미·일·중·러가 참가하는 6자회담이 개최되었다.

 

미국이 3자회담에 호응한 것은 우선 이라크 전쟁에 집중 하기 위해 북핵문제를 다자협상 틀 속에서 봉합, 관리하는 것 이 필요했으며, 3자회담이 북한을 다자협상 틀로 끌어내는 역 할을 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반면에 북한은 미국이 이라 크를 전격 침공하자 대북 군사적 조치도 취할 수 있다는 우려 속에서, 다자회담 속에서라도 미국과 양자회담을 추진해 나가 는 것이 북한의 이익에 부합된다는 판단을 했던 것으로 평가되 었다. 중국이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3자회담 개최에 적극적인 중재 역할을 수행한 것은 미·북 간 위협조치의 강도를 높여가 는 것이 한반도와 동북아의 안정을 해칠 수도 있다는 우려 때 문이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이렇게 볼 때 3자회담은 그 자체로 보면 아무런 진전 없이 결렬된 회담이지만, 6자회담으로 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한 회담이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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